top of page
53.jpg
그라데이션.png

파이트 클럽

Fight Club

 비싼 가구들로 집 안을 채우지만 삶에 강한 공허함을 느끼는 자동차 리콜 심사관 ‘오스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거친 남자 ‘디켈 시모어’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싸워봐야 네 자신을 알게 된다”라는 디켈 시모어의 말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오스카. 두 사람은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파이트 클럽’이라는 비밀 조직을 결성하고, 폭력으로 세상에 저항하는 거대한 집단이 형성된다.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파이트 클럽’은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변질되고, 오스카와 디켈 시모어 사이의 갈등도 점차 깊어져 가는데…

18.png

1999 | 139분

드라마 · 범죄 · 스릴러 · 블랙코미디 · 느와르 · 하드보일드 · 피카레스크 

오스카 하트 (V.O.)

People were always asking me, did I know Dickel Seymour.

사람들은 언제나 나에게 물었다, 디켈 시모어를 아느냐고.

 

페이드 인:

실내. 공실 - 마천루의 최상층 - 밤

 

“진짜로 죽는 건 아니야. 우린 영원히 살 거잖아? 그치?”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는 그 발언이 어쩐지 아쉬운 듯이 말한다. ‘그’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빛이 바래다 못해 너덜거리는 가죽이 단언컨대 그것은 명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다. 태그호이어, 해밀턴, 파텍 필립, 오메가⋯. 그런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는 물건들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건 쓰리피스 수트를 빼입고, 복근이 드러나는 캘빈 클라인의 광고를 보며 자신도 운동하겠다는 동기부여를 얻을 현대사회의 머저리들이나 1년 치 월급을 모아 탕진하는 거다. 손끝으로 시계의 크리스탈을 툭툭 두드리던 금발의 사내는 언젠가 말했었다. 자기계발은 자위행위에 불과해. 반면, 자기파괴는⋯ ⋯. (‘나’는 거기에 ‘그건 정말 엄청난 일이지’ 라고, 덧붙여줘야 했었나?)

 

“3분.”

 

‘빌어먹을, 디켈! 이건 정말 미친 짓이야. 당장 그만둬!’⋯라고, ‘나’는 눈앞의 지저분한 금발에게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물론 딱딱한 권총이 비좁은 입안에 꾸겨 넣어져 있는 지금은 아무리 혀를 굴려도 단 한 글자도 제대로 내뱉기 힘들었다. 터져버린 입술, 다른 누군가의 피가 흩뿌려진 뺨, 허옇게 뜬 눈물 자국과 찌들어가는 땀. 이 모든 타액이 한 곳에 섞여 전부 엉망진창이다. 이마에 들러붙은 흑발의 머리카락을 떼어내려다가 포기해 버린 ‘나’, 그러니까 ‘오스카’는 대신 고개를 슬쩍 돌려 아래를 확인한다. 71층.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땅바닥과 ‘우리’ 둘뿐인 최상층 사이, 71층만큼의 높이가 ‘우리’와 ‘세계’를 단절시키고 있었다.

 

“이게 앞으로 우리세계야. 2분 남았어.”

 

뉴욕의 파이낸셜 디스트릭트 곳곳에 설치된 폭탄이 모든 걸 터트려버리기 전까지, 그러니까 미래가 영영 바뀌어버리기 전까지 고작 2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운명적인 찰나에 ‘나’는 그저 어쩌다 내가 이 순간에 다다른 건지 생각해 보는 중이다. 매일 저녁 나는 죽었고, 매일 저녁 내가 다시 태어나 부활하는 동안, 프로젝트 메이헴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모든 걸 잃은 다음에야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어. 임무 수행 중 머리에 구멍이 뚫려버린 스페이스 몽키를 모두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며 슬퍼하던 순간, ‘디켈’이 그렇게 말했었지. (아니, 어쩌면 그건 ‘그’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우리의 영혼까지 지배하는 이 물질적인 세상에서 정말로 자유를 찾으려면, 우리는 결국 문명의 산물을 모두 초토화한 그라운드 제로 Ground Zero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그리고 로어 맨해튼을 수놓은 수백 개의 폭탄은 그저 단순한 시작점일 뿐이다.

 

이 위대한 여정의 시초를 지켜보며 감상에라도 젖고 싶었던 건지, ‘디켈’은 웃는 얼굴로 침이 번들거리는 총기를 빼내고서 창가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완전히 고개를 돌리기를 기다리던 ‘나’는, 손목을 옥죄던 밧줄을 벗어던지며 몇 시간 내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노력의 빛을 보았다. 생채기가 가득한 손으로 급하게 발목의 밧줄까지 풀어내곤, 창밖의 푸른 절경에 취해가던 그에게 몸을 날린다. 모든 게 바뀌기 전까지⋯ 앞으로 47초. 갑작스럽게 날려든 몸뚱어리에 당황한 그와 함께 바닥에서 구른다. 32초. 그런데 왜 지금에서야 그 말이 생각나는 걸까?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하지 마, 그냥 내버려 둬. 28초. 그렇게 지지부진한 몸싸움을 이어가다가, 결국 권총을 뺏는 것에 성공한다. 19초. 그래, 돌이켜보면 확실히⋯ ‘너’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마냥 좆같기만 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그리하여 쇠 맛이 느껴지는 입안에서 놀리던 혀로, 똑똑히 네 이름을 부른다.

 

“⋯디켈,”

“너,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려는 거야.”

 

‘그’를 비행기에서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어두컴컴한 술집 주차장에서 첫 주먹을 날린 일, 그리고 파이트 클럽의 규칙 제1조를 낭송했던 기억까지. 그저 절망적이고 비참하기만 해야 할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했을 때 좋았던 감정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비로소 결정했다. 어쩌면 한참 전에 해야 했던 각오를 이제서야 제대로 다지며. 억척스레 빼앗은 권총을 떨리는 손으로 고쳐잡고, 제 턱밑에 가까이 붙였다.

 

“믿어줘. 모든 게 다 잘될 거야.”

 

‘너’는 ‘나’를, 내 인생의 참 이상한 순간에 만났어⋯. 또 하나의 ‘세계’가 끝나는 것을 막으려고 달려드는 몸부림이 무색하게, 방아쇠는 망설임 없이 당겨진다. 이 총알은 정확하게 ‘우리’의 뇌를 꿰뚫을 것이며, 네가 약속했던 새로운 자유의 시대는 ‘우리’가 맞이할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 발칙한 반항이, 3초 후에 터지는 폭탄으로 온 세상이 망가지는 건 막을 수 없겠지. 하지만 이걸로 됐어, 이 정도면 괜찮아⋯ 같은 안이한 발상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엄청난 운동 에너지를 담은 금속 덩어리에 살갗이 짓이겨지고, 뼈가 대책 없이 으스러지며, 결국 물컹한 뇌에 내리꽂는 바로 그 순간. 눈앞에는 섬광과 어둠이 동시에 찾아오고 ‘세계’는 점멸한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폭발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마냥 푸르던 깊은 밤은 붉은 화마에 휩싸이기 시작했지만⋯ ⋯,

 

하지만 상관없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언젠가 모두 죽어버린다는 것을.

 

그러니 정해진 필연과 혼돈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컨텐츠 정보

출연

제작

53_1.png

디켈 시모어

Dickel Seymour

돌돌, 세븐

53_2.png

오스카 하트

Oscar Hart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