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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빌 2

Kill Bill: Volume 2

 깨어난 여동생을 위해 오랜 과거를 청산하고자 했던 암살자, 샤오화. 동료들의 눈을 피해 평범한 사람과 결혼식을 올리려던 찰나, 동료들이 그녀를 찾아왔다. 그 후 오래도록 잠들었다 깨어나니 남은 것은 동생을 잃은 샤오화 뿐. 차가운 복수를 맹세하는 여자의 앞에 차례대로 나타나는 각양각색의 과거의 동료들, 죽은 줄 알았던 여동생의 생존 소식까지. 그녀를 가로막는 것은 태연자약하게 웃는 유우야와 명랑한 하토, 낡은 가게에 숨어 있던 마론과 기온, 그리고 복수자 우부키. 과연 그녀는 여동생을 되찾고 과거를 묻어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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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 136분

액션 · 무협 · 범죄 · 스릴러 · 서스펜스 

눈꺼풀에 스며든 태양이 닫힌 망막을 두드린다. 쏟아진 빛의 무게는 시신경을 타고 흘러서 영원히 공전하는 추상적인 기하학 패턴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은 결국 오수에 취한 무의식을 파도치게 한다.

 

잠을 왜 자? 뒤지고 나면 무덤 속에서 실컷 잘 텐데. 그래,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듣기도 했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키는 작았는데, 나이는 많았다. 그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가끔은 하루 식사량보다 많은 수의 암살자를 만난다. 그래도 근래의 기억은 선명하다.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생사는 종종 넘나들어 봤지만, 생매장 당할뻔한(사실 당하기는 했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 경험은 그럼에도 강렬할 수밖에 없다. 사감은 아닌 거 아시죠. 몸은 좀 어때요? 제가 준비한 건 몸에 잘 받아요? 독으로 사지가 마비되며 대꾸할 수 없게 된 엔도 우부키를 나무관에 구겨 넣은 소년이 구덩이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인과율이란 거, 꽤 지독하게 느끼시리라 믿어요―. 그 정도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여전히 대꾸할 수 없다. 그리고 닫힌 관뚜껑과 압박해 오는 흙의 질량.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나마 무덤을 파헤치고 솟아오르기까지 사흘씩이나 걸릴 필요가 없었으니 다행이지. 이제는 해결된 일이다. 동시에 해결해야 할 엉킨 실타래처럼 쌓인 문제의 일부를 잘라낸 셈이기도 하고.

 

우부키는 눈 떴다. 마지막으로 떠올렸던 센도 유우야의 얼굴이 시야 사이로 따갑게 부서지는 빛에 산화했다. 태양은 지지 않았고 입안에서 모래 알갱이가 굴러다녔다. 찡그린 미간을 누르며, 까끌까끌한 것을 뱉어낸 그는 몸을 아주 일으켜 운전대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붉은 석양과 굽이치는 능선, 무성한 열대림이 가지 뻗친 자갈길을 향해 액셀을 밟았다.

 

 

하늘을 덮어 감싼 어둠이 마침내 걷힐 때까지 엔도 우부키는 곧게 뻗은 도로를 달렸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면서 길은 점차 닦였고, 그는 모래 먼지 너머로 드러난, 우람하게 드리운 나무 그늘과 짚을 엮어 만든 지붕에 덮인 허름한 노포 앞에 차를 세웠다.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훤히 들여다보이는 가게 내부로 발 딛자,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을 청소하던 종업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서 오세요, 손님!” 녹음 사이로 흔들리는 다홍색 머리카락을 지나쳐 들어선 안쪽은 더더욱 어수선했다. 잡동사니 사이사이로 무기력하게 놓인 거친 목제 테이블과 불편한 철제 의자, 널린 천 조각과 찢겨나간 방충망, 벽돌로 세우다 마감이 덜 된 카운터 벽면, 찌든 담배 냄새……. 풀벌레 소리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통에 더위가 식을 틈은 전혀 없을 것 같다. 우부키는 난잡한 공간 중심에서 홀로 정적을 지켜내고 있는 여성 앞으로 접근하였다. 서늘하고 이질적인 여자. 그가 매캐하고 달콤한 향이 나는 곰방대를 입에서 떼고 목소리를 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부키 님.” “날 아네.” “당신이 저희를 찾아온 것처럼요. 앉으시겠어요?” 우부키는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자리에 걸터앉자 곧 얼음을 띄운 차 두 잔이 자리에 놓였다. “놀랍네요.” “뭐가?” “한자리에 앉아 잔 나누는 일 말이에요. 우부키님께서 거친 반응을 보이실 가능성도 염두에 뒀기에.” “습격해 올 녀석이 아니라면 다툴 필요도 없으니까. 그리고 나도 네게 용건이 있어.” 여자의 입매에 맺힌 미소가 짙어졌다. “옳은 길을 따라오셨네요.” ‘옳다’는 표현도 ‘따라왔다’라는 표현도 어색한 어감으로 들렸으나 우부키는 성가신 지적을 생략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모른다고 대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소담한 테이블 양 끝을 손으로 짚었다. 또렷한 푸른 눈이 꿰뚫을 것처럼 여자의 암적색 눈과 시선을 맞추었다.

 

“빌은 어디 있어?”

 

엔도 우부키라는 인생의 커다란 뼈대가 되고 만 의문. 이 머나먼 여정 속에서 그는 언제나 답을 구한다. 여자, 아오키가하라 기온은 해답을 내려주는 자가 아니라 누군가 남긴 메아리를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한 존재였으나,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그에게 열쇠가 있다. “명심하셔야 할 것은, 우부키 님.” 한 모금 차를 즐긴 여자는 느긋하게 잔을 내려놓았다. “저희가 이미 당신에게 대가를 받았기에 대답합니다. 그것은 즉, 저희 주인께서 당신이 목적지를 찾길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 …….” 대가, 주인, 바람. 말 한마디에 복잡한 수수께끼가 셋이다. 잠자코 들은 그는 결국 결론 내리기에 가장 빠르고 쉬운 판단을 택한다. “그럼, 마지막까지 좋은 여행 되시길.” 여자가 웃었다. 그저 아지랑이였을지도 모른다. 이미 자리에 그는 없이 덜 마신 찻잔과 달콤한 향이 잔류하는 그늘만이 남아 있었다.

“좋은 여행이라…….”

나아가면 갈수록 그 표현과 상극으로 치닫는 여정 아닌가. 습한 더위에 절은 땀이 턱선을 타고 흘렀고, 녹은 얼음이 부딪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부키는 텁텁한 적막이 안겨준 찰나의 평화를 만끽하였다. 그 역시도 금세 과거의 유물로 전락했다. 풀벌레 소리를 등지고 자리에 선 다홍색 그림자. 양옆으로 나란히, 같은 얼굴이 둘이다. 한쪽은 여전히 찻주전자를 든 채로.

“죄송해요, 우부키님.” “원한은 조금도 없지만, 저희도 처지가 급해서요.”

우부키는 짧게 한숨 쉬었다. 뒤집히는 테이블이 바닥에 처박히는 소리를 신호로 자리에 있던 세 그림자가 동시에 움직였다.

컨텐츠 정보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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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화

小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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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우부키

圓藤 羽沫

제작

별, 주니, 생강, 새싹, 누비, 라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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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도 유우야

千堂 結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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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오카 마론

松岡 マロ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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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메하라 하토

夢原 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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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키가하라 기온

青木ヶ原 祇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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