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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배트맨

The Batman

 어린 시절 테러리스트에게 양 부모를 잃은 아치발트 키르마. 그는 복수vengeance이고, 고담 시를 수호하는 자경단이다. 그가 밤의 고담에서 암약하는 것은 철저한 비밀.
그런데, 아치발트 키르마의 자택으로 범죄자들의 신상이 담긴 편지가 도착한다.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모쪼록 잘 부탁합니다.」

 

 부탁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과 함께.
대체 누구에게 정체가 탄로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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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176분

슈퍼히어로 · 액션 · 범죄 · 스릴러 · 느와르 · 하드보일드 · 추리 · 다크히어로

 1.

 편지를 한 통 받았다. 받는 사람은 아치발트 키르마. 보내는 사람 이름이 없는 크라프트 소재의 서류 봉투에는 사진 십수 장과 인적사항 파일이 들어 있었다. 여백과 규격이 표마다 동일하게 적용된 문서는 강박마저 느껴질 만큼 깔끔했는데, 그 내용은 지극히 음침한 종류였으니, 문서에는 이곳 고담 시의 어둠에 몸을 맡긴 빌런의 정보가 가득했다. 뒤 구린 행각을 저지르고도 벌을 받지 않거나 교묘하게 법망을 뚫은 범죄자, 자본가, 공직자들. 그들의 인적사항과 거주지, 출몰 패턴, 그리고 목록화된 죄상이 편지 속에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을 만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동봉된 쪽지 한 장은 이런 내용이었다.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모쪼록 잘 부탁합니다.’

 아치발트는 편지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읽어냈다. 고문을 즐기는 갱단 보스 로만, 주식 사기로 거액의 돈을 횡령한 ‘백상아리’ 워런, 민간인을 상대로 약물 실험을 저지른 자이나, 사이비 종교단체의 우두머리 막시밀리안…. 하나같이 그가 주시하던 인물이었다. 언젠가는 제 손으로 직접 단죄하고 싶었기에. 고담의 테러리스트에게 부모를 잃은 그의 목표는 어느 순간부터 단순해졌다. 이 도시 바닥에 끈적하게 늘어붙은 모든 범죄자를 몰아내는 것.

 그는 복수vengeance이고, 고담 시를 수호하는 자경단이다.

 그러나 시선을 받는 기분은 그로서 조금도 달갑지 않았다. 오히려 곤란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두운 거리를 떠도는 그는 아치발트 키르마라기보다는 이름 없는— 단일한 망령에 가까웠으므로. 그는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탁상 전등을 껐다. 만에 하나, 순수한 선의로 이루어진 제보라고 하더라도 도무지 웃을 수 없었다. 손바닥을 들어 눈가를 덮으면, 올려다본 새까만 천장은 차마 잔상도 되지 못하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생각했다. 악의가 있을지도 몰라.

 ‘어디서, 누구에게 탄로가 난 거지?’


 

 2.

 발신자 추적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아치발트는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추측을 일방적으로 쌓아올렸다. 첫째, 편지를 보낸 그는 요령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편지를 두고 간 사람은 평범한 배달부였으며 그 일꾼은 매일을 쳇바퀴처럼 같은 길을 오가며 일을 했다. 편지가 출발한 배송 업체의 전산을 타고 올라가면 주소가 한 줄 출력되었다. 추측 두 번째, 어쩌면 그는 경계심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셋째,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내가 자신의 아군이라고, 혹은 그가 내 아군이라고 단단히 착각하는 모양이지.’

 목적지. 문부터 외벽까지 새하얗게 도색‘되었던’ 단독주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돌며 그 이상의 확인 절차를 과감히 생략하기로 결심했다. 주인 모를 집에서 익숙한 낯섦이 느껴졌기에. 과도하게 정돈된 문서와 한때 표백의 꿈을 꾼 듯한 이 집은 어쩔 수 없이 닮아 있었다. 흰 문과 벽은 오히려 뭇 사람의 이목을 끌어 거리의 오물과 악의적인 낙서로 뒤덮인 채였는데, 아치발트는 그 모습을 보며 집주인의 좌절을 일부 짐작했다.

 그는 갈라진 나무 문을 두드리는 대신 옆 건물 옥상으로 향해, 2층 뒤쪽 널찍한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단단한 창문 잠금을 주먹으로 내리쳐 부수고, 억지로 열린 문틈 사이로 운동화부터 끼워넣었다. 경보가 울렸던가. 그리고 꾀죄죄한 몰골의 집주인이 황급히 달려왔던가. 아치발트는 겉옷 후드 모자를 더 깊이 눌러쓰며 마스크를 올렸다.

 다만 그 남자의 첫 외침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아치발트 키르마….”

 아치발트는 마스크를 다시 내리지 않고 대꾸했다.

 “그러면 내가 여기에 온 이유도 알겠군.”

 남자는 단순히 놀란 게 아니라, 겁에 질려 있었다. 아치발트가 물었다.

 “이름은?”

 “위지 앤서니.”

 “웨이–치?”

 “위지….”

 대답하는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아치발트는 창고 방인 듯한 실내를 둘러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결벽증이 연상될 만큼 희게 페인트칠된 벽, 천장, 바닥, 가구, 서랍장, 리빙박스들. 상자 높이와 규격은 모두 동일했으며 폭이 지나치게 좁은 방에 천장까지 들어차 있었다. 게다가 박스뿐만 아니라 책등까지 흰 칠을 발라놓은 센스하고는. 아치발트는 조용히 혀를 찼다.

 “위지메디컬인가?”

 “그,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철자는 같은데요… 앤서니가 발음을 질질 끌며 말했다. 창백한 낯빛,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태도, 위축된 자세, 그는 악질보다는 괴짜에 가까운 꼴이었다. 아치발트는 인상을 찌푸렸다. 과연 응징한다고 해서 말을 들을까. 압박하는 것보다는 구슬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는 안타깝게도, 사람을 대하는 재주가 탁월하지는 못했다. 결론은 ‘겁만 주는 게 낫겠다’.

 아치발트가 우편으로 받은 서류를 봉투째로 앤서니에게 던지듯이 건넸다.

 “다시는 보내지 마.”

 “하지만.”

 그건 깊은 생각 없이 튀어나온 말 같았다. 노려보는 시선에도 앤서니는 더듬더듬 봉투에서 파일을 꺼냈다.

 종이가 접혀 끌려나오며 인화된 사진 수십 장이 바닥에 우수수 흩어졌다. 신분증이나 머그샷 따위로 조회가 가능한 증명사진을 제외하면 정면에서 촬영한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대부분은 CCTV, SNS, 어디에선가 훔쳐본 듯한 사진들. 앤서니는 몸을 숙여, 황급히 사진을 그러모아 아치발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로만 사이오니스, 그가 키르마 인더스트리의 직원을 습격한 게 세 달 전이에요.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다지만, 당신도 얼굴을 아는 사람이잖아요. 워런 화이트는 악질 사기꾼이죠. 뒤에서 범죄자들을 조종하고, 법정에서도 반성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있어요. 자이나 허드슨은 약물로 뒷골목 하루살이를 부추기고요. 막시밀리안 제우스는… 미치광이죠.”

 “…….”

 “당신이 뒤쫓는 사람들이잖아요.”

 앤서니가 사진을 서류 봉투에 다시 집어넣고, 아치발트에게 도로 건넸다.

 아치발트는 받지 않았다. 그 대신 몸을 굽혀 창틀을 밟았다.

 “모든 건 나의 복수지.”

 남의 도움 같은 건 받지 않아.

 집 밖으로 몸을 빼내어, 그가 뛰어내렸다. 흰 창틀에 발자국이 새까맣게 남았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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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정보

출연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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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발트 키르마

Archibald Kyrma

휴오, 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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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 앤서니

Weichi Anth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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