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딴엔 끔찍한 정적이었다. 마른 풀들이 부딪히는 소리는 일찍이 총성의 후폭풍에 모두 쓸려나갔고, 시신의 허벅지와 팔, 미간에서 흐르는 피는 불명의 암살자처럼 조용히 땅에 스몄다. 바싹 마른 비스킷과 다름없는 심정으로 남자는 천천히 품을 뒤지는 시늉을 했다. 담배는 있다. 없는 건 라이터 쪽이다.
이제 진짜 끊을 거니까 라이터는 당신이 맡아 줘. 아무리 부탁해도 불 안 줄 거 같으니 딱 맞군.
내게 줄 것 없이 버리면 되잖아. 왜 굳이 생판 남에게 맡겨가며 가지고 다니는 건지.
난 원래 물건 잘 안 버려. 이거 비싸다?
…그랬었지. 도리 없이 짜증이 밀려오는 것을 삼키자 어느새 흰 손 하나가 곁으로 뻗어와 손목을 까딱였다. 찰칵. 그 작은 소리가 뭐라고 적막은 급소를 찔린 듯 절명한다. 시야가 한 번 더 트인다.
그제야 남자, 아가타는 총을 쥐고 있는 손 쪽이 창백하게 질려 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고개를 숙인다. 품을 뒤졌던 한 손으로 담뱃갑을 짓눌러 한 개비를 문 후 얼굴을 들어 막 다가온 상대와 시선을 마주친다. 바람을 헤치고 오느라 회전초처럼 헝클어진 흰 머리칼 사이 얼핏 보이는 눈가로 모호한 빛이 스쳤다. 단순히 귀찮아하는 눈빛일지도 모른다. 손은 곧 다가와 아가타의 담배 끝에 불을 붙이고 떨어진다. 말은 한마디도 없다. 경솔했다는 힐난도, 괜찮냐는 걱정도. 아가타는 때로 남자의 그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 평정을 얄미워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지금은 솔직히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백발의 냉혈한은 함께 담배에 불을 붙이는 대신 몸을 기울여 존 도의 시체로 향했다. 이 각본가는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웃고 있는 게 맞다면 스스로는 이 결말에 만족한 것일까? 칠죄종에 대한 징벌과 교훈을 사사할 신화를 완성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름의 신념이 있는 사이코들은 제법 길게 일해온 형사, 넥토에게도 특히 어려운 종목이다. 그에게는 차라리 돈과 애욕, 편익을 구하는 범죄자들이 쉬웠다.
이 정신이상자의 청사진에서 아가타의 테마는 틀림없이 칠죄종 중 하나인 분노다. 늘 그렇듯 통찰을 위해, 넥토는 사망해 버린 존 도 대신 심사석에 앉아 평가를 시작했다. 대개 분노에 몸을 맡기고 총을 연사하는 이들은 탄창이 동나고도 몇 번이나 헛도는 방아쇠 음이 이어지곤 했지만 아가타는 그들보다는 아주 조금 더 침착했다. 그는 자신의 총에 남은 탄환이 몇 개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는 여섯 발의 탄환을 신중히 사용했다. 정확히 여섯 발째의 탄환에 이 범죄자, 존 도가 사망할 수 있도록. 어쩌면 그 집요함에서 컨셉에 알맞은 수준의 분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후회 안 해.”
둘 중에서 말하지 않는 채로 있는 것을 보다 견딜 수 없었던 건 아가타 쪽이었다. 그마저도 넥토에게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넥토는 존 도를 향해 굽혔던 허리를 펴고 고개를 돌렸다. 아가타의 검은 곱슬머리가 하늘에 성을 내듯 바람에 뒤집혔다. 넥토는 ‘안 물어봤는데’와 ‘그럴 줄 알았어’ 중에 답을 잠시 고민했으나 결국 가장 그의 심정에 가까운 말은 ‘알아'다. 정말로 알고 있었다. 상자를 들여다보았을 때부터, 그가 준비한 일을 아무것도 막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어찌 보면 존 도는 그 망상에 충실하게 신의 대리인 행세를 잘 해냈다고 할 수 있겠다. 길 잃은 영혼에 오해할 수 없는 계시를 내리지 않았는가? 복수하라!
그 성사와 같은 의무를 마치고 난 아가타는 극중 소품인 두 개의 머리통을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해서 넥토는 그것들을 살피기 위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묵직한 박스는 파손 주의 마크까지 찍힌 채 몇 겹씩 겹쳐져 있었고 가장 안쪽의 상자는 피를 흠뻑 머금어 붉게 눌어붙었다. 또 이런 시체들이 그렇듯 그들은 눈을 뜨고 있었는데, 어쩌면 연출을 위해 억지로 뜨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건 눈을 좀 마주쳐줘야 충격적이니까.
다만 넥토는 변덕으로 손가락 두 개를 들어 그것들의 눈을 감겨주었다. 데미가 먼저, 새뮤얼이 그다음,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뭐라 했지?”
“못 들은 척하는 건가요?”
새뮤얼은 아가타의 하우스메이트이자 다짜고짜 넥토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 당사자다. 새로 이사온 김에 이웃을 좀 사귀어두고 싶어서 한번 초대하려고 하니 사양하지 말아 달라고, 워낙 간곡히 부탁하기에 넥토는 결국 먹고 떨어지라 식으로 문지방을 넘게 되었다. (“이상하네.”, “뭐가?”, “원래 이런 녀석이 아니거든.”) 아가타의 의문에 대한 답이라도 하듯 그는 두 사람이 도착하자마자 냉큼 식사 준비 절반을 아가타에게 떠넘긴 후 스스로는 넥토의 맞은 편을 차지했다. 수화기 너머의 그 사근사근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무색한 횡포였다. 직업병 탓에, 넥토는 그에게 강아지 발톱보다도 관심이 없는 상태로도 그를 낱낱이 관찰한다.
멀끔해 보이는 낯,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이 남자는 평범한 샐러리맨을 연상시키는 단출한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 무난하기 그지없는 위장이 어쩐지 손거스러미처럼 걸리는 지점이 있었다. 아마 틀린 감은 아니었다. 넥토가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회계사라고 했다. 가늠하건대, 그 세 글자 앞에 ‘전’이 붙어야 할 것이고, 나름의 사연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아가타와 넥토는 서로의 교우관계까지 신경 쓸 사이는 아니므로 넥토가 그걸 꼬집을 일은 없다. 그런데 적어도 저쪽은 아가타의 교우관계에 참견할 만한 사이였던 모양이다.
“그 친군 코티오 씨가 마음에 든대요.”
이런 말이었지. 참.
“집에 들여서까지 해야 하는 말이 이거였다면 다음엔 제때 거절해 줄까.”
“그건 아닌데 그냥 궁금해서요. 그 친구 취향이 좀 그렇거든요. 어떤 사람이길래 냉큼 마음에 들었나 하고.”
“무슨 취향이기에.”
새뮤얼은 잠시 고민했다. 솔직하게 말할지, 좀 잘 포장할지. 실제로 마주한 넥토 코티오는 생각보다 어린 얼굴이었고, 나긋한 목소리와 고압적인 어투를 가졌으며,
“약간 모자란 걸 좋아하죠.”
“면전에 대고 욕하는 방식도 가지가지군.”
“제 욕도 되는데요.”
“그렇네. 넌 어디가 모자라지?”
…하여간 아부나 말장난으로 어쩔 수 있는 상대처럼 보이진 않았다. 비밀이에요. 형사님께 잘 보이고 싶어서요. 그 새살 거리는 작태에 넥토는 가볍게 치뜨듯 시선만 올렸다. 역시나 감흥을 읽어내기 어려운 시선이었다. 새뮤얼도 빙빙 도는 이야기는 그만뒀다.
“여긴 어떤 곳인가요?”
그 여상한 한 마디로 넥토는 그가 부득불 자신을 초대한 이유를 눈치챘다. 새뮤얼은 이 도시에 처음 발을 들이는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어떤 불안을 규명하고 싶은 충동과 함께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구하고 있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모든 이라는 말은 옳지 않았다. 부엌에 틀어박혀 셀러리 줄기를 부러뜨리고 있는 어떤 후배는 세상 모든 것에 예외가 있다는 것을 이 명제에서도 증명했다. 새뮤얼의 말마따나 취향이 이상해서 그런가. 넥토는 잠시 물을 마셔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대체 이 도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죄악의 온상? 범죄자들의 천국? 수많은 무해하고 무관심한 시민들이 뒤섞여 살아가다 생기는 비극들에 그렇구나 하고 눈물 한 방울로 치레하는 곳?
지금에 와선 어떻게 대답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뮤얼의 투덜거림이 꽤 오래 이어졌었기 때문이다. 동네가 좀 안 좋으면 어쩌겠어요. 저도 사지 멀쩡한 청년이고 또 데미를 걱정할 깜냥은 못 되니까. 이제 와 새집 구하기도 힘든데 그 녀석 일도 여기서 하는걸. 그래도 셋이 지내는 게 제법 괜찮은 건 사실이라…
“이제 저도 마음을 붙여 봐야죠. 아가타가 이미 마음을 정한 모양이니까.”
그즈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현관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왔어요. 짧게 친 머리의 여자가 겉옷을 정갈히 걸어두고 식탁으로 찾아왔다. 걸음 소리는 몇 번 나지도 않았는데 불쑥, 푸르스름한 머리통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늦었…. 데미는 낯선 손님의 존재에 잠시 놀랐지만, 아가타의 직장동료라는 새뮤얼에 소개에 의아한 시선은 거두어지고 셋이 살기엔 조금 좁을지도 모르는 집에 존재하는 것을 허가받는다. 그가 환영한다면 자신들이 환영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것처럼. 주방 안쪽에서 아가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재료를 뭐 이렇게 많이 사둔 거야? 하나같이 오래 두고 먹을 수도 없는 거로… 사람 데려다 두고 요리만 한세월 하게 생겼잖아. 아─ 미안 미안. 도와줄게. 그럼 코티오 씨, 여기 잠깐 앉아 계세요.
“그렇게 여기가 싫어? 맨날 떠난다고 할 정도로.”
“너야 날 본 지 얼마 안 되어서 모르겠지만, 은퇴가 몇 번이나 미뤄졌으니 자주 말하는 건 어쩔 수 없어.”
여태 넥토를 스쳐나간 직장동료는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거절하는 그를 꼬드겨 바의 문턱까지 넘게 만든 건 이 맹랑한 후배가 처음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번거로움을 충분히 감수했다고 생각하는 넥토로서는 자리에 앉고 난 후엔 모든 것을, 심지어는 주문까지 모조리 아가타에게 맡겨 버렸다. 넥토에게 마티니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으나… 사실 어떤 주종이 나왔어도 그는 크게 의문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올리브를 빼먹은 넥토는 잠시 생각하더니 굳이 한 마디를 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좋아할 구석은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는 곳 좋아하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지낼 사람 있고 몸 누일 장소 있으면 마음이야 자연히 붙는 거지.”
“그건 사람과 장소가 이유인 거잖아.”
“그 두 개는 어지간히 이상한 곳 안 가면 다 있는 거잖아~”
넥토는 내심 이 도시는 그 어지간히 이상한 곳에 속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주량 탓에 음주를 느리게 하는 편이었지만, 아가타는 술을 퍽 좋아하는 편이다. 당연히 넥토와 함께 시켰던 마티니는 벌써 비어 있었다. 다음 주종을 고민하는 손가락이 글라스를 가볍게 두드리다 챙, 잔을 가볍게 치는 소리가 났다.
“여기가 이런 곳이라 사람 셋 모일만한 자리 구하기가 좀 쉬웠던 것도 있고. 앞으로 할 일도 많을 거 같고. 그렇게 생각하면 제법 괜찮아.”
“긍정적인 발상이로군.”
“이미 왔는데 이왕이면 여기서 잘하고 싶다는 거지.”
“….”
답잖게 참 순진한 말이었고 넥토는 냉소하는 대신 자세를 바꿨다. 나름 성실한 말 상대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이것저것 떠보는 것에 어울려주면서 앞으로 일을 할 때 알아야 하는 것과 요령 따위를 대화의 여백이 생길 즈음에 툭 던져 채워두었다. 그 대화를 통해 아가타가 얻은 통찰은 세 개였다. 첫째, 이 도시에서 가지면 좋을 수많은 요령은 대부분 비공식적으로 이뤄져야만 한다는 것. 둘째, 평소 넥토는 그냥 자기가 귀찮아서 대화를 모조리 말아먹는 것이고, 마지막은,
“내가 보기에 당신은 어디에 있어도 그곳을 싫어했을걸?”
그 제법 태연을 가장한 어조에서 넥토는 무언가를 읽어냈다. 그래서 눈을 마주친 순간 아가타도 들켰다고 직감했다. 그의… 아주 얄팍한 동정을. 아가타는 바로 사과 아닌 사과를 했다.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마.”
“넌 내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없어.”
넥토는 그 동정에 다소의 염증을 느끼는 듯한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다소 빠르게 튀어나온 대꾸는 진실이고, 조금 더 깊은 맥락을 따지면 주제넘다는 소리다. 그가 조금 남은 잔을 깨끗이 비워내며 입을 열 때, 아가타가 깨달은 것에 하나가 추가되었다. 넥토는 주량이 약하다.
“기실 나는 이 도시에 실망할 게 없었지.”
이 도시에 기대하지 않으니 빼앗길 것도 없었다. 이 도시에서 그가 본격적으로 구한 것은 끽해야 지폐뭉치 정도가 전부다. 이마저도 목적이 될 순 없다. 그것은 수단이다. 필요에 따라 자행한 적절한 수준의 부패는 업무를 오히려 용이하게 해 주었고, 넥토는 그 직업과 무관하게 실익을 추구하는 페르소나를 착용하는 것이 훨씬 적성에 맞았다. 그가 가진 수많은 비공식적 업무 요령 역시도 그의 이런 성격과 행동양식에서 비롯되었다.
“따지고보면 이 도시를 싫어할만한 당사자성은 내게 존재하진 않지. 무사히 지냈다고 봐도 무방하달까.”
“이건 협박인가?”
“조언이야.”
“저주 같기도 한데.”
어쩌면 그건 저주가 맞을지도 모른다.
존 도가 죽고 나선 도시 전체에 비가 내렸다. 폭우는 도시의 모든 표면을 일곱 낮과 일곱 밤 동안 매섭게 때렸다. 재난이라고 부를만한 비였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던 악천후도 일주일이 지나자 순식간에 기세가 꺾여버렸다. 그토록 많은 물로도 이 도시의 오물을 전부 씻어낼 수 없겠다고 판단한 신이 한순간에 손을 거둬버린 것처럼. 세상을 쓸어버리지 못한 물은 찌꺼기만을 겨우 싣고 도랑에 고여 도시 너머로 무력하게 흘러가 버린다. 아직 쓸려가지 못한 한 남자를 두고.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지만 그는 길을 건너는 대신 보란 듯 차에 기대 서 있는 형사에게 시선을 못 박았다. 거리가 그리 가깝지도 않은데 그는 아가타가 말을 걸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 아가타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옳았다. 아가타는 그를 지나칠 수 없었다.
“당신 아직 여기 있네. 남기로 한 거야?”
“네가 떠나기로 한 거겠지.”
“하하….”
“잡아가려고 온 건 아니야.”
“그건 고맙네.”
넥토는 손안에서 아가타의 라이터를 굴렸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눈가에 희미한 웃음기가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이제 가거든. 겸사 가는 길 태워줄까 하고.”
“별로인데. 당신 운전 끔찍하잖아.”
“하하, 끔찍한 게 필요한 순간 아냐?”
때로 아가타는 존 도가 교만 옆에 적을 희생자 명단을 잘못 작성했다며 농담하곤 했는데, 그 항목에 더 어울리는 것은 이 형사라는 말만은 제법 진심이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아가타에게 넥토는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고, 심지어 제법 친절하게 손을 들어 자리를 권했다. 아가타는 몸을 굽혀 조수석에 들어앉았다. 험하게 다뤄졌음이 여실히 느껴지는 차 안에선 성능이 별로 좋지 않은 오디오가 G선상의 아리아를 재생한다. 희끄무레한 손이 볼륨을 조금 낮추고 시동을 켠다.
“어디로 가?”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당신은.”
아가타가 물었다.
“나야 어딜 가든 똑같겠지.”
넥토가 대답했다.
“아무리 멀리 가도 마찬가지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