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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CHICAGO

신사 숙녀 여러분! 유혹의 도시 시카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살인과 탐욕, 부패, 폭력, 사기, 배신…
그리고 재즈와 술,
그리고 어쩌면 사랑이 가득한 이야기를 감상하시게 될 겁니다.
바로 우리 모두가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것들이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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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 113분

뮤지컬 · 범죄 · 드라마 

 1.

「매혹적인 그러나 위험천만한 마피아 퀸,

 시카고 뒷골목의 어둠 속에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다!」

 

 독이 가득 든 성배처럼 화려하고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조간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교차로 모서리 신문 가판대에서 고급스러운 수트를 차려 입은 변호사가 신문을 집어들 때. “젊은 마피아 여왕이 쿡 카운티 교도소에서 보석으로 오늘 풀려난답니다!” 뉴스 보이가 신문 뭉치를 공중에 휘저으며 기사 제목을 고래고래 외쳤다. 소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변호사, 아이작 디아즈는 1센트 동전 두 개를 가판대에 위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그는 신호등 전봇대에 기대어 서서, 신문을 한 번 펼쳤다. 근엄해야 할 신문 기사는 그 내용이 엉망이었으니. 첫 면부터 이어지는 두 페이지나 ‘발칙한 마피아 여왕’ 레이첼 스칼렛의 가련한 인생사를  빼곡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세 면이나 되는 기삿거리 중 그가 무슨 범죄로 쿡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되었는지에 관한 보도는 고작 세 줄.

‘레이첼은 아침으로 먹을 에그 베이컨 샌드위치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불량배와 시비가 붙었다.’ 불량배의 신원은 기사에 전무. ‘그때 벽에 쌓여 있던 버려진 가구와 공사 자재가 시비를 건 불량배를 덮쳤다. 다행히도 레이첼은 민첩하게, 있는 힘을 쥐어짜, 쓰러지는 자재를 피했다.’ 세 번째 줄은 점입가경이었다. ‘운 좋게도 위기에서 살아남은 레이첼! 행운의 여신은 그녀에게 마지막까지 키스를 퍼부어줄 것인가? 혹은 사형대 위에서 그녀를 지켜볼 것인가?’ 아이작은 거기까지 읽고 신문을 덮었다.

 

 ‘순 지어낸 말뿐이네.’

 

 서류 가방에 신문을 접어 넣으며 그는 생각했다.

 ‘꽤 잘해줬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다. 아이작은 허공에 손짓해 택시를 불러 세웠다.

 이제 레이첼은 대중에게 더욱 친근해질 것이다. 가엾고 잔인한 운명을 타고난 상징이 될 것이다. 괴담은 영웅담이 될 것이다. 이미지가 어떻게 낭비되든, 또 이 사건이 어떤 파장을 불러오든, 아이작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운이 좋으면 성배 바닥에 가라앉은 금가루를 발견할 테고, 혹은 잠시 즐거워 춤을 출 수 있을 테고… 운이 나쁘면 온 도시 상수도에 맹독이 녹아들겠지.

 그래도 괜찮았다. 이 도시에서 가장 과감한 변호사는 오로지 수중의 의뢰와 의뢰인을 위해 움직였다.

 “어디로 갑니까?”

 도착한 택시 기사가 차 앞유리를 내리고 물었다.

 아이작이 대답했다.

 “쿡 카운티 교도소로.”


 

 2.

 카메라 플래시, 수많은 질문, 잔뜩 들뜬 영어 문장, 펜처럼 생긴 마이크 수십 개. 그 사이로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구차한 죄수복 따위 벗어던진 채로. 수많은 기자의 인터뷰를 정중하게 사양하는 건 변호사의 몫이었다. 레이첼은 도통 유쾌하지 못한 표정으로 준비된 캐딜락 뒷좌석에 올라탔다. 물론 머리를 짧게 깎은 ‘직원’이 문을 열어준 다음에야.

 그리고 그가 한 발을 차 안에 끼워넣었을 때.

 “한번 웃어 주시죠.”

 아이작이 ‘권유’했다. 흔들리는 시선을 마주하면 턱짓으로 말을 대신했다. 신호 끝에는 기자들이 있었다.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고 해요.”

 레이첼이 머뭇거리자 한마디 더.

 “반말로, 그런데 우아하게.”

 “그런 걸 어떻게…!”

 “시간 끌지 말고.”

 아이작은 여전한 무표정으로 말을 끊어냈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짧은 머뭇거림 끝에 레이첼은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 키스를 보냈다.

 “오늘, 다들 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그는 고무공처럼 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변호사까지 탑승하고 나서야 차가 출발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레이첼은 시트에 몸을 파묻으며, 자신의 자리에 준비된 모피 코트로 등과 어깨를 감았다. 엿듣는 취재진이 모두 도로 저 너머로 사라진 다음에야 그가 꺼낸 첫마디는 시시한 수준이었다.

 “너무 추워.”

 “어쩔 수 없어요.”

 창문을 가리는 커튼을 톡 두드리며 아이작이 대꾸했다.

 “미스 스칼렛, 당신 코트는 너무 고급이니까요.”

 “딱히 비싸지도 않은데.”

 “신문을 읽는 사람들은 비싸다고 생각하겠죠.”

 “이미지, 그놈의 이미지….”

 따분하다는 투로 레이첼이 손목을 빙글빙글 돌렸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요, 미스 스칼렛.”

 “알아! 안다고. 그치만 재판까지는 한 달이나 남았잖아.”

 “그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다시 철창에 처박히게 되겠죠.”

 “우웩, 곧 죽어도 사양이야. 거지 같은 감방, 거지 같은 우리 마마.”

 레이첼이 도어 포켓을 더듬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찰칵. 라이터에 불이 붙고… 매캐한 연기가 뒷좌석을 통해 운전석까지 퍼졌는데,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직원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독한 연기가 좁은 공간 안에 돌자 레이첼은 마침내 입꼬리를 올려 시원하게  웃었다. 그리고 금세 기분이 좋아진 듯, 상쾌한 어투로.

 “오늘 같은 날은 한 병 마셔야지.”

 너무나도 쉽게 불법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기겁하지도 질색하지도 않았다.

 “좋은 클럽을 알고 있는데.”

 오히려 가벼운 웃음을 흘리고는, 먼저 제안해왔다.


 

 3.

 여느 주류 밀매점이 그렇듯 건물에는 문이 없었다. 숨겨진 통로로 진입해야만 등장하는, 벽 한 꺼풀의 마법. 레이첼은 코트 옷소매로 코를 막으며 지하로 들어섰다. 안개처럼 자욱한 연기, 말초신경에 닿는 듯한 독한 알코올 향, 건물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는 게 이상한 음악. 드럼, 트럼펫, 색소폰, 피아노 사운드. 여긴 갱단 구역이잖아. 레이첼의 짧은 불평을 아이작은 깡그리 무시했다. 그는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중앙 테이블로 레이첼을 안내할 뿐이었다.

 “변호사 님. 이런 게 취향이야?”

 지나치게 시끄러웠다. 지나치게 향락적이었고. 이렇게 니코틴과 알코올에 절여서는 누구 한 사람이 죽어 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 공간에 쾌락을 최대한으로 두껍게 바르면 맨 아래에는 이러한 날카로운 스트레스가 가라앉지 않을까. 레이첼은 적대할 수밖에 없는 공간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작의 낯이 마침내 부드럽게 풀어진 것과 상반된 반응이었다.

 “여기는 끔찍하기 짝이 없죠.”

 “혹시 나를 엿 먹이려고 데려온 건가?”

 “그럴 리가. 당신은 끔찍한 게 얼마나 근사한지 모르는군요.”

 트럼펫 소리가 공기를 긁어 올리고, 드럼 박자가 빨라지는 그 순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몸을 비비며 가까워지는 생면부지의 이들. 터지는 샴페인. 맥주 거품. 탄산이 부글부글 끓는 소리. 누군가는 얼음 조각상을 바닥에 던져 부쉈으며,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고, 감옥의 죄수보다 더욱 지독한 죄를 지은 표정을 했는데, 그 무렵 아이작은 바에서 맥주 두 잔을 들고 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 혼자 인파를 헤집고 꼿꼿하게 걸어 꼿꼿하게 돌아왔다. 드물게 즐거운 얼굴이었다. 적은 표정에도 감정은 선명했으므로.

 “자유, 그리고 욕망!”

 저는 이 도시가 마음에 듭니다. 그는 맥주잔을 들고 선언하듯 말했다.

 “나는 이 땅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그러더니 쨍그랑. 그가 억지로 잔을 레이첼의 잔에 부딪혔다.

 유리가 부딪혀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그는 ‘당신은 특별해’ 같은 말 따위 해주지 않았다. 다만.

 그가 요구하는 변호사 수임료는 하나.

 “그러니까 나와 결혼해줘, 레이첼.”

 술은 차갑고, 음악은 뜨거워서.

 저 멀리에서 누군가 만취해 싸우는 것만 같았다.

 죽기 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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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정보

출연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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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샤크 디아즈

Ishaq Diaz

휴오, 팡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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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케 레이

Ariake R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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